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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주 정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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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소개[편집]
본관을 황해도 해주로 하는 대한민국의 성씨집단, 시조는 정숙으로 고려 신종 때 문과에 합격하여 전법정랑(典法正郞),중현대부(中顯大夫) 전객서령(典客署令)을 지냈다. 동래 정씨와 같이 인구가 많지도 않고 본관인 해주도 이북 지역이라 생소하여 사람들이 잘 모르는 편이다. 인구는 2015년 기준 45,101명.
2. 기원[편집]
선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해주(海州) 수양산(首陽山) 아래 오래 세거했던 사족(士族)으로 고려 때 정(鄭)씨를 사성(賜姓) 받았다고 한다. 이처럼 해주 정씨의 뿌리는 신라계가 아닌 패서(浿西) 일대에 거주하며 토성분정에 따라 성씨를 하사받은 고구려계 성씨 집단인 것으로 추정된다.[1]
아래에 후술되어있겠지만 본관이 황해도에 있다보니 집성촌이 대부분 황해도나 평안도에 있다. 남한에는 경기도, 경상남도, 충청남도, 전라남도
3. 역사[편집]
시조 정숙 이후 문헌이 소실되어 고려 말 소부소윤(少府少尹)을 지낸 정언(鄭琂)과 정관(鄭琯)을 1세조로 하여 2세 정윤규(鄭允珪)·정윤경(鄭允卿)·정윤진(鄭允珍), 3세 정역(鄭易)·정초(鄭初)로 해주를 본관으로 세계(世系)가 이어졌다. 해주 정씨는 조선 시대 문과 급제자 62명을 배출하였다.
조선시대에 왕가의 종친들이나 공신에게 군(君)이라는
4. 본관[편집]
해주 정씨의 본관인 해주는 현재 북한의 황해남도에 속해있는 지역이다. 본래는 고구려의 내미홀(內米忽)로 불렸다. 고려 태조(太祖) 때 해주로 개칭되었으며 목(牧)이 설치되었다. 별칭으로 지성(池城), 대령(大寧), 서해(西海), 고죽(孤竹), 수양(首陽)이라 하며 동국여지승람(東國與地勝覽)에 땅이 넓고 비옥하며 인구가 많아 관서(關西)의 큰 고을로 최씨(崔氏), 정씨(鄭氏), 오씨(吳氏) 3성이 가장 번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. 이 성씨에서 철산 정씨가 분직되었다.
5. 집성촌[편집]
6. 분파[편집]
- 정도공파
- 종파(宗派)
- 오정공파(梧亭公派)
- 삼옥공파(三玉公派)
- 주부공파(主簿公派)
- 허암공파(虛菴公派)
- 행촌공파(杏村公派)
- 용강공파(龍岡公派)
- 승지공파(承旨公派)
- 우후공파(虞候公派) 등
- 문학공파
- 통례공파(通禮公派)
- 생원공파(生員公派)
- 대제학공파(大提學公派)
- 판서공파(判書公派)
- 신당공파(新堂公派)
- 생원공파(生員公派)
- 한벽재공파(寒碧齋公派)
- 사과공파(司果公派)
- 농포공파(農圃公派)
7. 인물[편집]
- 정중부, 정균 : 고려 의종 무신정변을 일으킨 인물들. 조상 인정 여부 논란이 있고 해주정씨 문중에서는 조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추세 (자세한사항은 아래 참조)
- 정태춘 : 가수
- 정민섭, TULA, 정여진 : 아버지 정민섭이 정문부의 13대 직계 종손.
7.1. 정중부, 정균 부자[편집]
해주 정씨의 문중 에서는, 시조 이전의 선계에 대한 기록이 없어, 무신정변을 일으킨 당사자인 두 부자, 즉 시조 이전의 인물들에 대해서는, 명확한 관계를 따지기 어렵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. 참고
여러 역사서 및 사료들을 통하여 정중부가 해주 사람이고, 관향즉 본관이 해주임을 밝히고 있어, 명확하진 않지만, 윗대 선조로 부터 갈라져 나온, 먼 친척일 수 있다고는 추측이 가능하다.
정중부는 해주 사람이다.
...(생략)...
중부는 서해도의 군현을 관향(貫鄕)인 해주로 속하게 했다.
- 고려사 정중부 열전 中
8. 여담[편집]
- 대한민국의 법조타운 중 가장 유명한 곳인 정곡(鄭谷)빌딩(동관, 서관, 남관)이 바로 해주정씨대종친회 소유이다(다만, 남관은 현재 일부만 소유).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, 서울지방검찰청이 있는 곳 일대가 원래 해주 정씨 문중 소유 땅이며, 집성촌이었지만, 박정희 정권 시기 이를 국가가 수용하여 법원, 검찰청을 짓게 됨에 따라 그 보상금으로 지은 건물들이라고 한다.참고 기사
- 정곡빌딩의 수익금을 해주정씨 장학사업의 자금으로 사용하고 있다. 해주정씨 대종회 참고